발리 우붓에서 요가를 수행하며

처음으로 맞이하는 더운 연말이다. 따뜻한 크리스마스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은 명절을 염두하지 않다보니 그렇게 의미있지는 않다. 떠나야만 했었다. 여러 맥락이 쉽사리 수렴되지 않고 그저 병존하여 산재하던 일상에서 닻이 약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닻이란 생에 대한 이해이다. 필연적 죽음을 인지하고 현존에 최선을 다하며 삶을 영위하는 매 순간에 대한 인식이다.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적어도 스스로에게만큼은 마음깊이 합일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영민한 정신상태이다.

세 가지 문답을 통해 닻을 내린 후 늘 인식적 충만과 감각적 쾌락을 좇았다. 몸을 망치지 않는 성취의 도파민을 추구했고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 일상적 행위와 반복업무에 몰두하길 마다하지 않았고 음악과 운동을 가까이했다. 형편없이 취해서 삶의 무상함을 그만 참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주절거리며 공허를 토로하는 짓을 멈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납득하기로 결심한, 이 모든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는 마음에 나쁜 독을 뿌려 닻을 쇠하게 했다. 마치 자극을 수용하는 기관에 어떠한 세라믹 코팅이 입혀진 듯한 감각이 들었다. 새로움도 따뜻함도 즐거움도 그 어떤 감각도 마음에 일말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리는 기분. 모든 자극이 즉각적인 쾌고감수 혹은 가치판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학습된 인지과정을 거쳐 납득하는듯한. 습관적인 피상적 익살. 우연히 조합된 유전자의 결과물로써 그저 존재하는 인지의 다발. 다이나믹을 느끼고 싶어 오랜만에 본 공포영화도 영화관을 나서자 그 잔상이 조금도 남지않았다. 넘치게 베풀었던 나의 다정은 진심이 아니라 할 수 없지만 차라리 인류에 대한 범성애적 연정 혹은 연민에 가까운 것이었다.

철저한 유물론자 무신론자도 영성의 씨앗을 체험할 수 있는가. 온 마음을 다해 충만의 감각을 진정 향유하며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대양적 체험을 통해 우주의 연못에 발이라도 담그어 볼 수 있는가. 충동적으로 발리행 티켓과 우붓 요가원의 5일 숙박권을 예약하며 가졌던 생각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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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oman

30도가 넘는 한낮에 에어컨 없는 공간에서 눈을 감고 아사나를 취하면 턱밑으로 땀이 뚝뚝 떨어진다. 구루의 가이드에 따라 호흡을 하고 호흡에 맞게 빈야사를 반복한다. 손목을 곧게하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굳게 밀어내며 신체를 지탱한다. 평소에 잔뜩 수축되어있는 근육을 늘린다. 어깨와 가슴을 완전히 젖힌 상태에서 잠시 멈춘다. 크게 이완하는 동작이지만서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몸통에는 단단한 힘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몇차례 호흡. 심장 앞으로 양손을 모은 채 옴을 뱉고 shanti를 읊조린다.

정적이면서 강도높은 연결 동작의 반복은 잡념을 무른다. 이렇게나 사유를 멈춰본 적이 있었던가. 한시간 남짓의 수련이 마무리되면 반시간 동안은 명상과 진정한 이완의 시간을 갖는다. 작은 매트위에 편안히 눕는다. 손바닥으로 단단하고 건조한 요가원의 원목 마루바닥을 느낀다. Nyoman studio에서는 눈을 감고 호흡하다보면 뺨에 닿는 옅은 바깥바람이 선선하다. 구루에 따라 싱잉볼의 울림이나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이어지는 것이 일품이다. River dome은 천장이 매우 높아 이곳에서 수련한 뒤에는 굳이 눈을 감지 않는다. 수직의 빈공간에서 오는 압도감이 쉼에 더해지는 것이 좋다. 인위로 지어진 아름다운 음악 대신 강물의 소리를 듣는다. 늘 기타를 연주하는 Paul도 이곳에서 수련할 때 만큼은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은 가장 숙련된 수련자이자 모두의 구루이다.

Paul's guitar

수련 중에 구루는 아낌없이 격언을 한다. 고양된 상태에서 듣는 격언은 꽤 마음에 닿는다. 강물에 마음을 씻어낼 것. 들숨에 머리로 신선한 혈류를 보낼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신체와 작은 매트 안의 공간일 뿐 이외의 공간은 모두 흘러가게 내버려 둘 것. 중력에 맡겨 이완할 것. 들리는 소리와 불어오는 바람, 느껴지는 온도에 그저 순응(surrender)할 것.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할 것. 완전하게 휴식할 것. 더더욱 깊고 완전하게 휴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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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특정 격언은 나를 자꾸만 수련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함께 이 순간 수련하고 있는 것에 감사할 것. 대자연과 지구와 우주에게 감사할 것. 존재함에 감사할 것. 이러한 격언이 들리는 순간 고양감은 시들고 공기는 급격하게 텁텁해진다. 원목바닥은 끈적하고 바람은 후덥지근하다. 그리고 자신은 갑자기 과학주의자로 변모해 잘 알지도 못하는 현대물리학을 들먹이며 자연에, 우주에, 존재에 나는 절대 감사할 수 없으며 이 모든것에 어떠한 섭리란 없고 그저 잔인한 우연의 산물만이 있을 뿐이라고 마구 외치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워진다. 물론 이러한 격언은 보통 수련의 가장 마지막 시간에 행해지기에 나는 그저 흩어진 집중력에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나서면 되었다. 영성을 체험하고자 호기롭게 방문했으면서 아직도 깊은 회의를 단 일주일만도 놓지 못하고 독성을 퍼뜨리는 생각을 이어나가는게 한심했다.

Riverdome

특정 수련에는 꽤나 주술적이고 컬트적인 행위들도 있다. 대학시절 질리도록 배웠던 오리엔탈리즘이 떠올랐다. 젊은 백인들이 대부분인 이유도 일부 여기에 있을테다.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해 이런 행위에 참여했다. 뜻을 알지 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만트라를 주문처럼 외웠고 귀를 막고 고음을 내기도 한다. 회음부에 또아리 형태로 잠재된 우주에너지를 척추를 통해 끌어올리기 위한 기승위가 연상되는 동작도, 제3의 눈을 뜨기 위해 이마에 온 집중을 모아 엄지손가락의 마디로 미간을 아프게 누르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침 7시의 정적인 하타, 가장 뜨거운 오후 3시의 역동적인 빈야사, 지친 몸으로 해가 지는 시간에 진행하는 특이한 수행들은 신체와 정신을 꽤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킨다. 수행하는동안 술과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 밤마다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요가는 깊은 이완을 포함하기에 근육통이 없고 손목과 무릎에 약간의 피로감만 남을 뿐이다. 정신적으로도 명상을 계속하기에 졸음은 남지 않는다. 이러한 날들의 반복은 고양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밤이 되었다.

Spiritual night, Christmas eve

마지막 밤은 어쩌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날 밤의 수련에서는 참여자 모두가 매우 진하고 씁쓸한 카카오를 컵에 담아 마셨다. 카카오는 마음을 열게 한다는 구루의 말이 재밌었다. 더이상 수련에 긴장은 없었고 처음 맛보는 카카오는 어릴적 읽었던 윌리웡카 공장의 폭포를 연상시켰다. 수련에 참여한 사람들과 무작위로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고 합장과 포옹을 한다. 비슈누를 예찬하는 노래를 따라부르고 밴드의 연주에 흥이 오르면 자유롭게 춤을 춘다. 쌓여온 고양감이 극에 달해 전과 다르게 확연하게 마음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처음보는 외국인들과 춤을 맞추니 킬킬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이 순간이라면 어쩌면 존재에 감사할수도 있겠다고, 수련을 계속하면 천국이나 열반은 못되더라도 어떠한 황홀경은 경험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카카오의 힘이 대단하다.

Cacao!

수련의 마지막에 다시금 명상을 하며 구루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축복하고 격언을 시작했다. 요가원 답지않게 유쾌한 시간이었던 만큼 순간의 즐거움에 대한 격언일 것을 예상했고 이번 격언은 충분하게 받아들여볼 준비를 했다. 허나 마지막의 격언은 달랐다. 네가 이 시간에 참여하게 만든 너의 목적이 무엇이며, 이러한 즐거움과 축복의 시간에서 그 목적을 이루기 어렵게 만드는 단 하나의 장애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간파당한 기분이 들었다. 찰나의 명상이 이어졌고 그다지 연상하고싶지 않았던 나의 깊은 회의가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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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의 완전무결한 무목적성이 저를 힘들게합니다. 초월적인 무목적성 하에 이루어지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감각들이 그저 작위적으로 느껴집니다. 우주가 유일하게 인간에게 선사하는 가르침인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은 저를 깊은 존재론적 위기감에 빠지게 합니다. 무한과 영원 하에서는 윤회도, 해탈도 원치않으며 그저 소멸만이 정합한 답이 될 수 밖에 없음이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쇠와 죽음이 너무나 두려우며 이러한 모든 사유에 대해 고통을 겪는 약한 자신이 한스럽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립자에 지나지않는 존재가 사유로 고통을 겪는 그 이유를 그 무엇도 설명해줄 수 없음이 저를 정말이지 사무치게 외롭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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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마쳤다. 이번 명상에는 사념이 가득했으니 실패다. 구루는 이 수행 공간을 벗어나며 네가 생각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길 빌었다. 늘 감정이 아닌 인식이자 현상이라 판단했던 깊은 공허가 처음으로 못내 슬펐다.

Sunrise yoga

익일 출국은 자정에 근접한 늦은 밤이다. 출국일에도 오전 7시의 정적인 하타, 오후 2시의 yin요가 수행을 마쳤다. river dome의 강물소리는 닷새 째 변함없고 nyoman studio의 바람도 늘 그대로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동적인 상태가 곧 항상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